High Voltage

High Voltage는 AC/DC의 첫 국제 무대 진출작이다. 사실 동명의 앨범으로 내용물에 차이가 있는 작품이 호주반으로 이미 발매된 적이 있기는 하다. AC/DC의 초기작들도 Beatles의 초기 디스코그래피만큼 복잡해서 종잡을 수 없는데,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바가 없다. 개인적으로 추측하기로는 당시 영미권의 레이블에서 이들의 음악에서 장래성을 읽을 수 없어서 계약을 하지 않았거나, 아니면 AC/DC 본인들이 국제무대에서의 성공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. 즉, 이들은 본인들이 만든 앨범을 모국 호주에서나 팔릴법한 내수용으로 판단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.

AC/DC의 High Voltage 호주반은 자국에서만 세븐 플래티넘을 기록했는데, 이는 대단한 성공이 아니지 않을 수 없었다. 모국에서의 성공은 이윽고 영미권 유력 레이블과 계약을 하게했고, 결국 AC/DC는 대중음악씬의 핵심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. 밴드는 미국 무대로 첫 진출할 앨범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호주에서 발매한 두 앨범에서 반응이 좋았던 곡만을 추려서 편집하고 여기에 신곡 두곡만을 수록하여 공식적인 이들의 데뷔 앨범 High Voltage가 발매되었다. 당시에만해도 Hard Rock의 위세는 대단해서 이들이 성공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. 70년대 하드록의 총아 Led Zeppelin은 Physical Graffiti 이후 주춤하고 있었지만, 그 뒤를 잇는 Aerosmith는 Toys in the Attic에서 오른 기세로 걸작 Rocks까지 발표하면서 절정에 달해있었다. AC/DC는 자연스럽게 이와같은 추세에 편승할 수 있었고, High Voltage는 자그마치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하여 영미권을 진동시켰다.

이들이 데뷔한 순간부터 이렇게 거대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초기부터 확고히했던 자신들의 음악성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. 블루스 리프에 기반한 고출력 하드록 사운드는 영미권 대중들에게도 익숙했고, 이들의 스타일은 완성도도 경탄할 정도로 높았다. It's a Long Way to the Top이나 Live Wire, T.N.T., Can I Sit Next to You Girl 같은 곡들로 AC/DC의 성공은 거의 예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. 이 곡들은 현재까지도 AC/DC의 고전으로 잘 알려져있는데, 이렇게 유력한 명곡들이 즐비한 앨범이 실패하는 것이 이상하다. 이들의 대표적인 명작으로는 주로 Highway to Hell과 Back in Black이 자주 언급되는 편인데, 개인적으로는 High Voltage도 두 앨범들 못지 않다. 밴드가 처음으로 거둔 국제적인 성공이니만큼 High Voltage가 가진 의의는 이들의 전설적인 두 명반에 비길만 하다고 본다.